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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백제 흔적을 찾아 떠난 전북 익산 여행
백제 부흥 꿈 담은 미륵사지와 석탑
무왕이 살았던 왕궁리 유적
미륵사지 배후에 미륵산에도 흔적 남아 |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석탑인 전북 익산의 미륵사지 석탑. 1997년부터 20여년간 해체 보수·정비를 마치고 지난해 일반에 공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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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전북)=글·사진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전북 익산. 옛 이름은 이리(裡里)다. 속(안)으로 들어간 마을이란 뜻이다. 이리도 원래 이름은 아니다. 일제강점기 이전에는 ‘솜리’라고 불렸다. 이를 일제강점기에 한문 형식으로 바꾸다 보니 이리가 됐다. 왜 익산이 속마을, 혹은 안마을로 불렸는지는 미륵산에 올라보면 저절로 알게 된다. 정상에 서면 어마어마하게 너른 들녘이 펼쳐진다. 전주와 완주, 익산 등이 이 너른 들녘에 깃들어 있다. 너른 들녘의 안쪽에 들어서 있는 마을이 바로 익산이다. 고대 국가 백제 무왕도 이 들녘을 발판 삼아 부흥을 꿈꿨다. 그 흔적을 찾아 익산으로 향한다.
| 미륵사지 석탑과 당간지주, 그 너머로 보이는 미륵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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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현존 최고·최대의 석탑과 조우하다
백제의 유적지라면 부여와 공주를 꼽는 게 보통이다. 익산에도 백제의 흔적들이 적지 않다. 익산에 남아 있는 백제 유적은 거의 전부가 무왕 때의 것이다. 무왕은 신라로 들어가 진평왕의 딸인 선화공주와 세기의 로맨스를 벌였던 서동. 그가 바로 무왕이다. 그는 백제 법왕이 재위 2년 만에 숨을 거두자, 그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미륵산 남쪽 아래에는 무왕의 흔적이 있다. 바로 미륵사지(사적 150호)와 왕궁리유적이다. 미륵사는 삼국시대 절 가운데 백제의 사찰 중 최대규모였다. 이 절터에 그 유명한 미륵사지 석탑(국보 11호)이 있다. 익산에서 알려진 명소를 꼽자면 이 석탑을 가장 먼저 손꼽을 정도다. 무왕은 아마 이 거대한 탑을 품은 미륵사를 짓고 백성들에게 기대와 희망을 심어 주려 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 미륵사지 석탑 중 동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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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석탑은 미륵사에 세운 3기의 탑 가운데 서쪽에 있는 탑이다. 국내 현존하는 최고(最古)·최대(最大)의 석탑이다. 미륵사는 무왕과 선화공주가 세운 절로 알려졌다. 삼국유사의 기록 때문이다. 삼국유사에는 백제 무왕이 미륵사지를 지은 내력을 이렇게 말한다. “무왕이 어느 날 부인과 함께 미륵산의 절집 사자산에 향을 올리러 가다가 큰 연못에서 미륵삼존상을 발견한다. 가마를 멈추고 예를 올린 무왕은 ‘이곳에다 큰 절을 세우기 원한다’는 아내의 청을 허락한다. 사자사 주지인 지명법사에게 절 짓기를 청하자 신통력으로 하룻밤 만에 산을 깎아 못을 메워 평지를 만들었다. 그 땅에다 불전과 탑, 회랑을 각각 3곳에 세웠다. 신라 진평왕이 여러 사람을 보내 절 짓기를 돕게 하니 그 절이 지금도 남아 있다”라고 썼다. 여기서 무왕의 부인이 바로 선화공주라고 단정한 것이다.
| 미륵사지 석탑 사리봉영기. 해체복원 중이던 미륵사지 석탑에서 석탑 조성과정을 적은 금판을 발견했다.(사진=국립익산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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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이 모든 사실을 뒤엎는 엄청난 유물이 나왔다. 해체복원 중이던 미륵사지 석탑에서 석탑 조성과정을 적은 금판을 발견한 것. 금판에는 미륵사 석탑을 조성한 이가 ‘639년 백제왕후인 사택적덕의 딸’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늘 사실처럼 붙어 다니던 서동과 선화공주의 애틋한 사랑은 거기에 없었다. 사택 씨는 백제의 유력한 귀족. 신라 공주가 사택 왕후일 수는 없었다. 이 발굴로 선화공주가 가공인물이라는 주장이 유력해졌지만, 무왕에게 여러 부인이 있었을 것이라는 반론도 제기됐다. 미륵사의 3개 절터와 석탑은 각각 시차를 두고 지었다는 주장이다. 세개의 탑 중 하나는 사택적덕의 딸이 지었고, 다른 두 탑 중 하나는 선화공주가 지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 왕궁리 유적에 왕궁이 있었다는 증거인 수부 인장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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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루지 못한 무왕의 꿈, 그의 흔적을 따라가다
현재의 미륵사지에 옛 모습의 탑은 없다. 동서쪽에 2개의 9층 석탑이 있었고, 그 가운데 우람한 목탑이 있었다고 한다. 목탑은 1000여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동탑도 복원하기는 했지만, 자세히 보지 않으면 모조품처럼 보인다. 서탑은 일제강점기 때 땜질하듯 시멘트로 발라놓았다가 지난 2000년 붕괴위기에 처하지 대대적인 해체 보수작업으로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 백제 무왕이 살았던 왕궁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는 왕궁리. 백제가 멸망한 후 왕궁터에 사찰을 세운 독특한 유적이다. 이 절터에는 왕궁리 오층석탑이 세워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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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사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왕궁면 왕궁리에 무왕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하는 왕궁이 있던 자리가 있다. 바로 왕궁리 유적(사적 제408호)이다. 왕궁이 있었을 것이라는 가장 확실하고 직접적인 지명이 아닐까. 백제가 멸망한 이후에는 왕궁터에 사찰을 세운 독특한 유적이다. 1889년부터 지금까지 발굴조사가 이뤄지고 있다. 이곳에서는 동서 245m, 남북 490m에 이르는 왕궁의 규모와 담장뿐 아니라 왕궁 내부의 건물지와 석축, 백제 최고의 정원 유적, 금과 유리를 가공, 생산했던 공방터, 화장실 유적을 발굴했다.
왕궁리 유적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왕궁리 오층석탑(국보 제289호)이다. 이 탑은 사찰이 언제 세워졌는지 알려진 바가 없어 탑이 세워진 시기도 의견이 분분하다. 시대가 어떻든 8.5m에 이르는 위풍당당한 이 석탑은 왕궁리 유적을 사방으로 돌아가며 둘러봐야 제맛이다. 특히 서편으로 해가 떨어질 때쯤 붉게 물들어가는 하늘 아래 우뚝 솟은 석탑의 실루엣이 가히 장관이다.
| 미륵사지 뒤편 미륵산 중턱에 있는 사자사. 무왕 부부가 다녔을 것으로 추정하는 사자암이 있던 자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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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왕의 흔적은 미륵사지 뒤편의 미륵산에도 남아 있다. 산 정상 아래에 자리하고 있는 사자암. 내비게이션에 사자암 주차장까지 올라갈 수 있다. 여기서 약 20분 정도 가녀리게 솟은 이대 숲을 따라 올라가면 미륵산 정상 바로 아래에 사자사가 있다. 이 사자사 자리가 무왕 부부가 다녔던 사자암이 있던 자리다. 사자암에서 내려다보는 미륵사지와 익산 들녘의 풍광도 멋있지만, 더 멋진 전망을 보겠다면 정상까지 오르면 된다. 정상에서는 미륵사지의 전경과 함께 익산 땅의 장쾌한 전망도 함께 조망할 수 있다.
여기까지 왔다면 미륵산성에도 들러야 한다.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백제시대 미륵사지를 중심으로 익산을 방어하기 위해 쌓은 산성으로 추정하고 있다. 무왕은 나라의 중심을 익산으로 옮기려 했고, 수도를 방어할 성이 필요했다. 그래서 지어진 게 바로 미륵산성이라는 것이다. 성의 둘레는 1.8㎞ 남짓. 전체 성곽 중 3분 1 정도만 복원됐지만, 구불구불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성곽의 규모가 대단하다.
| 해질 무렵 바라본 왕궁리 오층 석탑. 서편으로 해가 떨어질 때쯤 붉게 물들어가는 하늘 아래 우뚝 솟은 석탑의 실루엣이 가히 장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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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메모
△가는 길 = 호남고속도로 익산교차로에서 720번 지방도로를 타고 익산 쪽으로 5.4㎞ 가다 보면 금마사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우회전하면 금마고 좌회전하면 삼례를 거쳐 전주 가는 길이다. 호남고속도로 논산교차로에서 1번 국도를 타고 연무, 여산을 거쳐 금마로 갈 수도 있으며, 삼례교차로로 나와 역시 1번 국도를 타고 갈 수도 있다.
△여행팁= 오는 10일 익산국립박물관이 문을 연다. 개관을 기념해 왕궁리 오층석탑 사리장엄구(국보 제123호)를 볼 수 있는 특별전시회가 11일부터 3월29일까지 열린다. 무려 55년만에 익산의 품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이 사리장엄구는 1965년 왕궁리 오층석탑(국보 제289호) 보수를 위해 해체하던 중 발견한 것. 2000년대 이후 발견된 부여 왕흥사지나 익산 미륵사지 석탑 사리장엄구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는 평가다.
| 미륵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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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록 (rock@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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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광화문 거리. 연합뉴스.금요일인 10일은 전국이 대체로 맑겠으나 중부 내륙과 일부 남부 내륙은 아침에 다소 춥겠다.
이날 아침 최저 기온은 영하 8∼1도, 낮 최고 기온은 3∼11도로 예보됐다.
기상청은 “중부 내륙과 일부 남부 내륙에서 아침 기온이 -10도 내외로 떨어지는 곳이 있겠다. 11일까지 내륙을 중심으로 낮과 밤의 기온 차가 크겠으니 건강 관리에 유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미세먼지 농도는 서울과 경기도·강원 영서·충북·대구는 ‘나쁨’, 그 밖 권역은 ‘보통’ 수준을 나타낼 것으로 예상된다.
국립환경과학원 대기질통합예보센터는 대기 정체로 국내에서 발생한 미세먼지가 축적돼 중부 내륙과 일부 영남권에서 농도가 높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새벽부터 아침 사이에는 내륙을 중심으로 안개가 끼는 곳이 있겠다. 운전할 때 시야를 확보하는 등 교통안전에 신경 써야 한다.
동해안에서는 오전까지 너울에 의한 높은 물결이 해안 도로나 방파제를 넘을 수 있다. 해안가에서는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남해안은 천문조에 의해 바닷물의 높이가 높겠다. 만조 때 해안가 저지대에서는 침수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바다 물결은 서해 앞바다에서 0.5∼1.0m, 남해 앞바다에서 0.5∼1.5m, 동해 앞바다에서 0.5∼2.5m 높이로 일겠다.
먼바다 파고는 서해·남해 0.5∼2.0m, 동해 1.0∼3.0m로 예보됐다.
손봉석 기자 paulsoh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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